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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이야기

Malone, my 1st travelling - 2

by 1st magnolia 2023. 5. 10.

처음 켈리가 내게 준 후보지는 두 개였나 세 개였나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다만 내가 말론을 선택했던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그 당시 뉴욕주에서 트래벌 널스를 구하는 병원 중에 가장 페이가 좋은 병원 중 하나였다.
2. 정말 드물게도 7am to 7pm 포지션 available 했다. 절대 밤에는 일하지 않겠다는 마음이었기 대문에 집에서 너무 멀지만 내게는 너무 소중한 조건이었다.
3. 다른 병원들은 다들 사이즈가 있는 병원이었고 나름 큰 도시에 있었다. 그런데 말론은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병원이었다. 음... 느낌적으로다가 좀 덜 바쁠 거 같아...라고 생각했다. 처음 하는 일인데 조금은 느슨하게 시작하는 게 좋겠지...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엄청난 오해였단 걸 알게 됐지만...

켈리에게 말론으로 가겠다고 했다. 병원 이름은 Alice Hyde Medical Center. Vermont University Medical Center 소속이었다. 병원은 뉴욕주에 있지만 버몬트 주랑 가까운 곳에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 병원 ED 매니저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이미 내 career에 대한 것들은 레쥬메에 다 적혀 있었으므로, 나를 평가하는 것에 대한 질문은 오고 가진 않았다 - 일하던 병원의 규모나 연차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정보들로 이미 병원은 인터뷰를 해야 할 널스가 그 병원에서 일이 가능한지 아닌지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매니저는 병원과 응급실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를 해줬던 것 같다.  내가 트래벌 널스를 처음 한다는 것에 대해 염려하는 질문이 있긴 했지만, 누구나 처음은 있고, 널싱의 기본은 universal 한 것이니, 그냥 친절을 표현하는 질문 정도로 받아들였다. 나는 patient - nurse ratio에 대해 물었던 것 같고, 코비드 환자들을 그 ED에서는 어떻게 분류해서 널스에게 배정하는지 정도 물었던 거 같이다. 요즘은 코비드 환자가 있어도 아무런 threat 이 되지 못하지만, 당시에는 심각한 respiratory distress를 보이는 환자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고, 내가 그 병원의 regular nurse 가 아니라는 이유로 나만 코비드 환자를 보게 되는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인터뷰 후에 내 리쿠르터인 Kelly에게 연락이 왔다, 그 병원에서는 나를 맘에 들어한다고. 사실 인터뷰는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병원은 주로 트래벌 널스인 내가 선택한다. 내가 병원을 선택하면, 형식적인 인터뷰 같은 절차를 밟은 후에, 특별한 경우가 생기지 않는 이상은 그 병원에서 일하게 된다고 보는 게 맞다. 일을 시작하기 전 필요한 데이오프를  미리 신청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족들과 계획한 휴가가 있다거나, 여행계획을 미리 세워 뒀다거나, doctor's appointment 가 있다거나 하는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트래벌 널스의 경우, 내가 미리 요구한 데이오프의 날짜를 계약서에 명시해야 하므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전 미리 알려달라는 공문이 온다. 그때를 놓치고 나중에 request 하게 되면, 그때는 내가 신청한 날짜를 개런티 받지 못한다. 나의 경우에는 한 달에 한번 날짜 상관없이 3일짜리 오프를 줄 것, 이라는 요구를 했었다. 트래벌 널스를 하기는 하지만, 풀타임으로 일하던 병원에서 내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 뉴욕 시티에서 per Diem 일을 하기로 했으므로. 3일의 오프가 주어지면 < 첫날은 말론에서 집으로 내려오기 - 둘째 날은 per Diem 일하기  - 셋째 날은 집에서 말론으로 돌아오기 >를 해야만 했기 때문에 3일짜리 오프를 한 달에 한 번은 받아야만 했다.

리쿠르터를 찾고, 에이전시를 결정하고, 병원을 찾고, 인터뷰하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고, 그런 건 2021년 6월쯤 부터였다. 일을 시작하게 된 건 10월이었다. 병원이 결정되고 나면 준비해야 할 서류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각 병원에서 주는 skill checklist 가 있다. 온라인으로 들어가서 각각의 스킬에 대한 내 경험치의 정도를 숫자로 표시하거나 내 능숙도, 자신감들을 숫자로 체크해 보내준다. 예를 들자면, cardioversion은 해 봤는지, 일주일에 혹은 한 달에 몇 번쯤 해봤는지, 혼자 할 수 있는지, 아니면 트레이닝이 한두 번 정도 필요한지 등등을 0부터 5까지 정도로 마킹하는 것이다. 신체검사도 받아야 한다. Urine drug test는 병원이 바뀔 때마다 혹은 병원이 바뀌지 않더라도 최소 1년마다는 받아야 하고, TB test 역시 매년 제출해야 한다. flu season이 시작되면 flu shot을 제출해야 하고, COVID shot 역시 제출해야 한다. 병원에서 주는 skill list 말고 agency에 제출해야 하는 skill list 역시 있다. 그건 그 에이전시를 선택함과 동시에 제출하는 게 좋다. 그 에이전시용 스킬 체크리스트를 토대로 내 레쥬메를 각각의 병원에 제출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BLS, ACLS, PALS는 기본이다. 응급실 이므로 TNCC(Trauma Nursing Core Course)를 요구하는 병원도 많다. 당시 말론의 병원은 트라우마 센터가 없었기 때문에 renew 하지 않았다. 현재 일하는 병원도 트래벌 널스에게는 트라우마 환자를 배정하지 않기 때문에 역시 renew 하지 않았다.

2021년 10월 25일. 내 첫 트래벌 출근날이었다. 48 hours/week. 일주일에 4일. 13주의 계약.
2021년 10월 24일 아침. 분주할 이유는 없었다. 짐도 다 쌌고 필요한 모든 준비는 완료였다. 내일이 첫 출근 이므로 그냥 그곳에 도착하는 것, 그것이 유일하게 남은 과제였다.

Malone은 우리 집에서 344 마일 떨어져 있었다. 구글맵을 하니, 쉬지 않고 운전한다면 5시간 30분이 걸린다고 나온다. 음... 중간이 한두 번 정도 쉬어줄 거니까, 한  6시간 반 정도 걸리겠구나 했다. 킬로미터로 계산하니 554 킬로미터로 나온다. 서울과 부산 거리를 구글 하니 320 km. 서울과 부산 거리보다는 멀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지금에 와서 숫자로 보니 스스로 '나 너무 대견했구나...' 싶다. 그 먼 거리를,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돈 좀 더 벌어 보겠다고, 익숙한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떠날 결심을 했다니... 말하기 너무 창피하지만, 사실은 눈물이 났었다. 지금은 헤어진 남자친구가 엘에이에서 왔었다. 말론까지 데려다주겠다고. 그런데 말론으로 날 데려다주고 나면 다시 엘에이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너무 깡촌이라 차를 렌트하는 곳도 두세 시간 거리에 있었고, 공항 역시 캐나다 쪽이 젤 가까운 곳이었다. 그냥 24일 아침, 말론으로 떠나는 길에 뉴욕 JFK 공항에 내려줬다. 헤어지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내 두근거림이, 설렘보다는 긴장에 가깝다는 걸 모르지 않았었지만, 스스로도 눈물까지 흘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Comfort Zone을 벗어난다는 게 스스로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이 스트레스였단 걸 깨달았다. 그래도 어쩌리. 이미 말론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는걸... 혼자 미국도 왔는데 말론을 못 가리... 두려움도 사실 겪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그동안 너무 안주해서 새로운 경험들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살았구나... 아마 말론처럼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면 눈물 같은 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론은 그냥... 너무 멀었다. 너무 새로운 장소였고 별로 알고 싶고 탐험하고 싶은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말론으로 가는 길은 나쁘지 않았다. 얼마나 속도를 내서 달렸는지... 뉴욕시를 벗어난 지 얼마 되자 않아 차들이 점점 없어지더니 나중엔 말론까지 가는 길에 나만 남았다. 고속도로 전세 낸 것 마냥. 속도를 엄청 냈었다. 도로에는 나밖에 없어서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는 건지 속도도 실감 나지 않았다. Speed ticket을 끊을 경찰도 없었다. 그냥... 혼자 달렸다, 마치 나만 사는 세상처럼. 중간에 한번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그때는 유튭으로 오디오북에 빠졌었다. 어떤 소설을 읽어주는 여자였는데, 목소리도 톤도 맘에 들었다. 멀리까지 지겹지 않게 운전할 수 있었다.

트래벌 널스들은 트래벌을 하는 동안 거주할 장소가 필요하다. Airbnb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에어비앤비는 너무 비싸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로 short term stay를 구하는 트래벌 널스들은 드물다. 트래벌 널스들 뿐 아니라 의사들, PA나 NP들도 트래벌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위한 온라인 비즈니스가 있다. 나는 주로  furnished finder라는 웹사이트를 이용했었다. 그런데 말론은 너무 시골시골~이었나 보다. Furnished finder에 말론은 나오지 않았다.  local 부동산에 전화를 해보기도 했지만 전화를 받는 곳조차 없었다. 전화대신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 한번 받은 적이 없었다. 결국은 Kelly를 통해 병원 응급실 매니저에게 연락했다. 사정을 설명하니 연락이 가능한 부동산 중개업자를 소개해줬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렌탈사업을 하는 어떤 사람의 연락처를 내게 전해왔다. 그렇게 찾은 작은 studio - 미국에서 studio 라 함은 한국으로 치면 원룸 같은 곳이다. 한 달에 $1200이었는지 $1400이었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거리가 멀어 직접 보고 결정할 수도 없었지만, 사실 옵션 자체가 없었다. 사진으로 만난 그 스튜디오는 꽤 맘에 들기도 했고. 1층에서 건물로 들어가는 현관 비밀번호와 내 호수의 비밀번호를 받았다. 그 번호들을 핸드폰에 저장했다. 외우면 되는 걸 굳이 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후 세시 반쯤 도착했던 것 같다,  13주 동안 내 집이 되어줄 그 스튜디오로. 1층에는 레스토랑이 있는 2층짜리 건물이었는데, 1층 레스토랑은 가을 겨울에는 운영을 안 하는 듯했다. 음... 그럼 레스토랑 파킹장에 차를 둬야지~ 짐이 많았다. 짐을 간추리고 간추린다고 애를 썼지만 트렁크에 뒷좌석까지 꽉꽉 채웠던 기억이 난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주로 갔다면 필요한 건 사야지 하는 맘으로 가볍게 왔겠지만, 6시간이 넘게 걸려도 차를 타고 움직이는 거니까, 요가매트부터 혹시 히팅이 잘 되지 않을 것까지 대비해 전기담요에 portable heater까지 다 준비해 갔다. 작은 식물이 까지 하나 챙기고, 언니에게 선물 받았던 눈이 예쁜 나무늘보 인형 까지도 챙겨갔다. 2층까지 좁고 높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아파트까지 대충 짐을 올려놓았다. 핸드폰에 저장해 둔 비밀번호를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은 넓은 곳 같더니만... 상당히 좁고 길고 어둡고 그래서 갑갑하다...  그래도 괜찮아 묵을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되뇌며 나머지 짐을 가지러 다시 차로 내려갔다. 다시 짐을 들고 올라와 문을 열고 들어가려니 핸드폰을 어디 뒀는지 도저히 못 찾겠다. 비밀번호를 기억해 내려 아무리 애를 써도, 누르는 번호 족족 다 틀린 번호로 나온다. 오마이가~앗... 나 완전 큰일 났다 어쩌지...? 심장이 두근두근 입술이 바싹 마른다. 핸드폰을 집 안 소파에 뒀던가... 대체 어디 놔둔 거지? 아 화장실을 급하게 쓰느라 아무렇게나 소파 위에 던져뒀나 보다. 정말 망했다... 대충 집을 치우고 나면 병원도 한번 모의로 가볼 생각이었는데... 그럼 차 열쇠는 어디 뒀지..? 아 다행히 내 바지 뒷주머니 속에 얌전히 들어있구나... 여긴 아는 사람도 없고 열쇠공을 구글 할 핸드폰은 잠긴 문 안에 있고... 숙소에서 병원 가는 길도 모르지만 일단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병원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면 컴퓨터를 쓸 수 있게 해 주겠지... 그런 다음, 이메일로 들어가서 비밀번호를 다시 찾자! 병원은 여기서 10분 정도 거리였으니 일단 나가서 어떻게든 병원부터 찾자! 그런 맘으로 다시 차에 올랐다. 좌회전 사거리에 병원 표시 팻말이 보인다. 그래 저 길로 가면 되나 보다. 길에 사람 한 명 없구나... 스산해 ㅠ..ㅠ 그러다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어떤 동네분이 보여서 창문을 열고 병원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그렇게 찾아온 병원. 응급실에 무작정 들어갔다.

Hello.
먼저 인사를 하고 내 이름을 말하고 날 소개했다. 나 내일부터 여기 응급실에서 일하기로 한 널스인데, 지금 말론에 도착했는데, 내 숙소는 문이 잠겼고, 나는 비밀번호가 있는 핸드폰을 숙소 안에 두고 나와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야 ㅠ..ㅠ 그 비밀번호, 내 이멜만 보면 찾을 수 있는데 혹시 나 너희 컴퓨터 좀 쓸 수 있을까? 흠... 나는 그렇게 쉽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더니 처음엔 응급실 접수원이랑 얘길 하고, 다음엔 응급실 간호사를 두어 명 만났고, 그러고 나서는 주말 응급실 당직 매니저를 만났다. 컴퓨터는 보안상의 문제가 있어서 쓰게 해 줄 수 없으니 자기가 방법을 찾을때 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한두 시간 정도를 응급실 대기실에서 앉아 무작정 기다렸다. 당직 널스 매니저는 그날 오프인 응급실 널스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고, 응급실 널스 매니저는 내게 연락이 닿았던 리얼터에게 연락을 하고, 그 리얼터는 내게 숙소를 렌트해 준 그 사람에게 연락하고,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집 문을 열어 주겠다고 했다. 내 숙소 비밀번호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수 없으니 직접 사람을 보내 문을 열어주겠다는 거였다. 음... 맞아... 여긴 미국이지... 절대 편리함을 위해 일을 쉽게 해결하지 않는 곳이지... 내가 병원 인터넷을 쓴다고 뭔 일이 있으랴... 하는 건 내 생각이고, 나는 아직 이 병원에서 일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컴퓨터를 쓰게 해 줄리가 없었다. 힘들고 귀찮고 시간이 걸려도, policy를 따라야 하는 곳. Policy에서 찾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고 해도 지름길로 가는 방법을 택하지 않는 나라. 에휴휴... 두 시간이나 멍하니 앉아 기다리면서 시간을 허비했지만, 책임은 내게 있으니, 그렇게라도 도와준, 사실 귀찮고 시간 걸리는 일인데 웃으며 도와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해야지.

그렇게 힘들게 다시 들어온 숙소. 도착은 세시 반에 했으면서, 막상 들어온건 여섯 시가 다 되어서였다니... 짐을 풀자. 빨리 정리하고 좀 쉬자. 그렇게 짐을 풀었다.. 그러다 핸드폰을 드디어 찾았는데 아... 내가 미쳤구나, 정신이 나갔구나... 핸드폰은 숙소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두 번째 옮겼던 가방 주머니에 곱게 들어있는 게 아닌가... 내가 대체 언제 이걸 이 가방에 넣어뒀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났다. 그냥 나는 그날 정신이 반 정도 나가 있었고, 짐을 여러 번 옮기는 중에 핸드폰을 여러 가방 중 하나에 잠시 넣어뒀었고, 그 가방에 뒀단 걸 기억만 하면 곱게 숙소에 들어가기만 하면 됐던걸, 그걸 기억하지 못해서, 병원을 찾아가 쌩 난리를 친 후, 힘들고 어렵게 집에 들어오게 된 거였다. 하아... 나 내일부터 일 잘할 수 있을까... 낼부터 조심하라고 액땜한 걸로 치자... 정신줄 단단히 잡고 실수하지 말라는 신의 선물일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숙소는 너무 무서웠다. 2층짜리 건물의 1층은 레스토랑이었지만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 2층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숙소가 고시원처럼 줄지어 있었지만, 너무 조용하고 사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내 숙소 맞은편 유닛에는 키패드가 달려있지 않았길래 혹시나 해서 열어보니 텅텅 빈 공사장이었다. 아직 뼈대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거미줄이 구석구석 쳐져 있을 것만 같았다. 이게 뭐지... 이 건물 안에 나 혼자 사는 건가? 횅하고 스산하고 춥고 무서워 ㅠ..ㅠ 건물은 나름 말론 시내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워낙에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 아니다 보니, 저녁이면 상가들 불이 다 꺼져 가끔 다니는 차들이 내는 불빛이 거의 전부였다. 그 상가들도 부서지고 쓰지 않는 빌딩들이 많아, 창문들이 깨지고 빌딩 자체도 스산한 것들이 많았다. 사실 상가라고 부를만한 것도 많이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모르고 온 거잖아. 딱 13주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 놀려고 온 게 아니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첫날밤을 보냈다. 잠들기 전, 방 문 앞에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혹시 누가 밖에서 들어올 수 없게 조치를 한 후에.

첫 출근.
병원에 도착해 nursing office를 찾아갔다. 간단한 병원 라운딩을 받았다. 사진을 찍고 ID를 만든 후 응급실로 갔다. 말론 응급실은 정말 작은 triage Room 하나,  아주 작은 nurse station 하나, 그 station을 사이에 두고 응급실을 세 개의 팀으로 분리해 뒀다. 각각의 팀에 한 명의 널스가 배정되고, 모든 환자를 다 어우르는 attending doctor 한 명이 있다. 레지던트나 PA, NP 같은 건 없었다. 철저히 널스와 attending doctor 한 명. 그래서 사소한 레지던트 일들은 널스가 한다. 예를 들면 ABG 라던가 NGT insertion 같은 것들. 세 팀 중 두 팀에 코비드 환자를 받을 수 있는 병실들이 있었고, 나머지 한 팀은 코비드 환자를 받지 않았다. 팀은 매일 돌아가면서 로테이션을 했다. 오리엔테이션은 이틀정도 받았던 것 같다. 보통은 하루 혹은 이틀의 오리엔테이션을 준다. 가장 빨리 익숙해져야 할 건 각 병원의 챠팅 시스템이다.  대부분의 병원들이 EPIC system으로 바꾸는 중이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규모가 있는 뉴욕시티의 병원들은 EPIC을 쓰지만,  뉴욕시티 밖으로 나가면 각기 다른 시스템들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그 시스템에 빨리 적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일은 일주일에 4일 하는 걸로 했다. 7am에 시작해서 7:30pm에 끝나는 day shift였다. 보통은 대부분 night shift 널스를 찾기 때문에 day shift가 가능한 포지션을 찾다 보니 말론까지 오게 된 거기도 했다. 나는 밤에 일하기는 너무 싫었다. 트래벌은 하겠지만 밤에 트래벌을 해야 한다면 그건 no no였다. 같이 일하는 널스들은 괜찮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 잦다면 그것도 스트레스일 꺼라 생각했었는데, 며칠 하다 보니 아무렇지도 않아 졌다. 어딜 가나 사람들은 대부분 다정하고 친절하다. 어디에나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고 나를 맘에 안 들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니, 극 내향이었던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변해가다가, 이제는 E 49%, I 51%쯤 된 느낌이랄까.

13주 계약을 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13주를 다 채우지는 못했다. 한국에 급히 들어가야만 하는 응급상황이 생겨서 7시 반까지 마저 일을 마치지도 못한 채 나는 5시쯤 급히 병원을 나왔다. 숙소도 13주 계약이었지만 도중에 나와야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급히 다시 짐을 싸고 대충 숙소를 정리한 후 뉴져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병원에 전화를 걸어 매니저랑 통화를 했다. 응급상황이었고 이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서 미안하다고, 그런 말을 전했다. 리쿠르터인 Kelly에게도 사정을 설명했다. 일하는 중간에 나와야만 했고 13주를 다 채울 수 없는 상황이며 한국으로 급히 떠나야 한다고. 보통 계약을 다 채우지 못하면 그 널스의 이름은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그 리스트들은 때로는 다른 에이젼시에 돌고 돌 때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응급상황이었기에 아무런 페널티도 받지 않았다.  한 달쯤 뒤 Kelly를 통해 다시 말론의 그 병원에 돌아갈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말론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응급실은 심하게 바빴고, 런치 브레이크도 나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갈 수 없었다. 사실 나만 기를 쓰고 점심시간을 챙겼다. 아니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면서 30분 브레이크조차 가질 수 없다니 대체 너무하잖아. 오프인 날 쉴 공간이 되어준 내 숙소는, 밤에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에 푹 잠들기 어려웠고 낮에는 너무 좁고 어두웠다. 작은 동네는 너무 할 게 없었다. 이러니 미국 아빠들은 매우 가정적이란 소리를 듣는 거구나 했다. 주변에 오픈한 레스토랑 하나 찾기가 쉽지 않은걸.

말론 이후로 결심했다. 다시는 시골의 작은 병원에서는 트래벌을 하지 않으리.
첫째로, 시골의 응급실은 바빠도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다른 시골 병원의 응급실이라고 덜 바쁘랴. 응급실이야 바쁘지 않은 병원을 찾는 것도 불가능 하지만, 응급실이 있는 병원이 워낙 드물어서 환자들은 멀리서 멀리서도 찾아왔고 항상 너무 붐볐다. 중환도 적지 않았다. 그런 환자들은 제대로 된 중환자실과 수술실 그리고 필요한 장비들을 갖춘 도시의 큰 병원으로 transfer 보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transfer 과정에 필요한 서류 작업을 대신해 주는 비서들도 너무 빨리 퇴근했다. 결국엔 내가 서류 작업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게다가 레지던트가 없으니 자잘한 일들까지 해야만 했고... 나는 덜 바쁠 거라고, 처음 하는 트래벌이니까 워밍업도 할 겸 조금 덜 바쁜 데서 시작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오히려 내 생각에 내가 당해서 매일매일 녹초가 되어 퇴근했었다.

둘째로, 너무너무 멀고 심심했다. 나야 워낙에 집순이 인지라 집에서 혼자 노는 걸 사랑하지만, 말론처럼 어둡고 지나치게 사람 없는 곳은 그래도 별로. 뭔가 그 동네의 음침한 분위기가 싫기도 했고. 내 눈에만 혹시 음침해 보였던 갈까? 어쩜 나는 항상 도시인이었던지라 더 그랬던 걸까. 사람들은 모두 가정이 있고, 싱글인 사람은 나 혼자였어서 오프라고 만나 커피 한잔 할 친구조차 만들 수 없었으니, 그래서 어쩜 더 외롭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 없이 혼자 놀기를 못하는 편도 아닌데, 너무 갈 곳도 구경할 곳도 없었다. 오프날엔 거실에 혼자 앉아 티브이 보기, 책 읽기, 맛있는 거 해 먹기.. 같은 것들이 나의 소확행인데, 이곳의 거실은 창문도 없이 어둡고 좁아터져서 불편하고 갑갑했다. 퍼디엠을 하는 뉴욕시티의 병원까지 한번 다녀오면 3일이 바쁘게 지났다. 여러모로 편리하지 않았다. 한 번은 말론에서 일하는 중간에 애리조나에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제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공항이, 그것도 두 시간 거리여서, 차라리 6시간을 운전해야 하더라도, 여러모로 편리한 집 근처 뉴저지에 있는 공항을 이용했던 생각도 난다. 그냥 말론이 나랑 궁합이 안 맞았던 걸까?

어쨌든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러니 무조건 직접 부딪히고 직접 해 봐야 하는 수밖에... 그러면서 새로운 경험에 대한 두려움은 무뎌지고, 자신감은 더 자라는 좋은 기분도 느끼게 되는 것. 말론 같은 시골은 유난히 일이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 백인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미국의 외딴 마을에서, 부유하지 않은 시골 마을의 미국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나마 보게 되면서, 미국인들이 왜 보수적인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까지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아주 값진 경험이었다. 그래, 두 번까지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해서, 말론이 다 싫었던 건 아니다. 사실 듣보잡이었던 그곳이, 이제는 인생에서 잊기도 어려운 장소가 되기까지, 대단한 스토리가 있는 경험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작은 임팩트를 남겨, Malone이라고 하면 개인적으로는 post Malone 이 아닌, Ah... Malone 하는 모먼트를 남기게 되는... 짧았지만 기억에 남는...

그렇게 시작한 트래벌 널스가 어느덧 1년 6개월째. 많이 오래 할 것 같지는 않다. 다시 full time nurse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으니. 언제 그만두든, 시작은 Malone이었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 그 덕에 평생 몰랐을, 미국인들 조차 모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미국의 작은 구석을 조금이나마 경험해 보았다니, 그걸로 이미 잘 한 일일지도 모른다. 혹시 우연히 그곳을 지나쳐 간다면, 그때는 못 먹어본 그 fresh한 닭장 속 계란들을 사 먹어 봐야지~ 겨울의 말론이어서 싫었던 걸지도 모른다. 다른 예쁜 계절에 말론을 우연히 지나친다면, 아... 겨울이 아닌 말론은 참 좋구나... 할지도
.


말론으로 가던 첫날. 휴게소에 들려 커피 한잔에 숨 고르기.

 

작은 숙소의 유일한 숨구멍 이었던 창문.
다른식물이들은 다 친구들에게 넘기고 튼튼하게 잘 자라는 요녀석 하나는 말론까지 데려왔다. 살아있는 무엇이 필요할 거란걸 알았던걸까.
Alice Hyde Medical Center의 응급실 앞.
슈퍼마켓은 숙소에서 10분 거리즈음에 있었는데, 가는 길에 이런 헛간들이 많았다. 겨울에는 젖소들이 너무도 추워 할꺼 같은데...
말론에서 집으로 내려가는 길.
말론에서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풍력발전기가 어찌나 많던지... 저 풍경을 좋아했었다. 숙소에서 30분 정도만 내려오면 줄지어 돌아가던... 가끔은 차에서 내려 아무도 없는 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잠시나마 크게 숨을 들이키며 감상했었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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